다크 나이트, 지독하다.





다크나이트 - 정의로부터 태어난 악, 그리고 전설로...


목요일 밤에 개봉한 다크나이트를 일요일까지 안보고 기다리는 것은 내게 매우 힘든 일이었다. 수많은 감상문과 스포일러, 쏟아지는 찬사와 감탄, 자신의 죽음으로써 전설로 승화시킨 히스 레저의 조커 등등... 고작 4일 간 나는 면벽에 든 수도승이 되어야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동안 벼려온 칼을 꺼내듯 용산 IMAX에서 다크나이트를 관람하고 온 나의 소감은,

'배트맨과 그 세계관에 대한 영화론적 정의가 완벽히 구현된 작품이다.' 라는 것이다. 아, 이런 말로는 내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천박한 내 글솜씨로는 이게 한계다. 게다가 간만에 맥주를 한 잔 들이키고 온 터라 더욱 번잡한 글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미리 눈여겨보았던 로오나 님의 평을 트랙백해서 몇 가지를 읊어보고자 한다. 원래 남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게 성공의 비결이라고 그러지 않던가. 누구냐고? 아마 뉴턴일 걸? (믿으면 골룸)

이제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알아서들 피해가시길.



서두없이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영화 참으로 지독하기 그지 없다. 왜? 그야 너무 잘 만들었거든. (퍽) 쉰 소리같지만 사실이니 넘어가자. 이 만한 임팩트를 주는 영화, 내 인생에 시네마천국과 쇼생크 탈출, 그리고 대부 이래로 처음이다. 그리고 미국 히어로들의 빠를 자처하는 내겐 당분간 최고의 영화로 기억될 듯 하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면면을 좀 살펴보자. 일단 곁가지 케릭터부터. 영화 만의 오리지널 케릭인 루시우스 폭스는 어디까지나 감초. 영화의 배경을 좀 더 디테일하고도 개연적으로 꾸미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원작의 배트맨은 육체 뿐만 아니라 두뇌 수준에 있어서도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서 있는 남자. 고로 무슨 일을 하던 알프레도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이 별로 없다. (물론 이용하는 경우는 넘치고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를 만든다.) 그런 비중을 가진 역할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모건 프리먼이 맡아줘서 그저 볼에 홍조가... 이번 작에서도 배트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장면에 나와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이 부분은 있다가 배트맨에 대해서 얘기할 때 하도록 하자.)

그리고 문제의 레이첼... 일단 케이티 홈즈에서 메기 질렌할로 바뀐 시점에서 왠지 패배한 느낌이 드는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일설에 의하면 시나리오 상으로 도중 탈락하는 것 때문에 케이티 홈즈가 거부했다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영화를 스스로 걷어차고 나온 그녀가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역시나 영화의 오리지널 케릭터이자 배트맨의 상대역을 맡은 레이첼이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건 워너나 DC의 입장에선 절대 사절하고 싶은 전개였으리라. 애초에 팀 버튼에게 맞겼던 지난 배트맨 시리즈의 처참한 몰락을 경험한 그들이 다시 자청해서 원작의 스토리라인에서 크게 이탈하려 들 리가 없다는 게 내 소견이다. (물론 팀 버튼이 맡았던 배트맨과 배트맨 리턴즈는 각각 명작과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배트맨이라는 소재를 빌린 팀 버튼 고유의 다크 판타지 영화일 뿐. 이에 대해서는 조커 쪽에서 좀 더 얘기해보겠다.) 어짜피 적어도 두 편은 더 나올 놀란표 배트맨에 등장할 히로인은 적게 잡아도 둘이다. 캣우먼과 탈리아 알 굴. (배트맨 비긴즈의 리암 니슨이 연기했던 라스 알 굴의 딸이며 아빠에게 츤츤대는 귀여운(?) 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적절한 퇴장 타이밍에 개연성과 스토리 상의 연계 또한 나무랄 데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잘 했네 레이첼. 힘내라! (어?..)

다음은 알프레드. 말이 필요있나? 원작의 샤프한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묵묵히 배트맨의 뒤를 봐주는 세심한 배려와 은은히 묻어나오는 위트는 누가봐도 알프레드 바로 당신이었어. 참고로 원작에서도 어지간한 수술은 혼자서 해결하는 알프레드옹이다. 사실 브루스보다 브루스 몸을 더 속속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능.. 다른 사람은 다 떠나도 알프레드만큼은 배트맨 옆을 지켜줄 꺼라능.. 하악하악 (난 BL을 즐기지 않는다. 다만 조커 없는 배트맨이 앙코 없는 찐빵이라면, 알프레드 없는 배트맨은 글러브 없는 야구선수와도 같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제발 이 시리즈가 끝나기 전까지 마이클 케인이 아무 일도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007에서 Q가 바뀌었을 때의 충격을 배트맨에서마저 느끼고 싶진 않거든.

첫 장면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유사 배트맨들'을 보면서 며칠 전 구입했던 다크나이트 리턴즈의 늙은 배트맨이 생각났다. 이미 인생의 좋은 물 나쁜 물 이상한 물(?) 다 마셔본 그는 청년기의 활력을 대신하여 그들을 자신의 보완재로 쓰기로 하는 반면, 영화 속의 배트맨은 아직 철이 없던, 아니 로빈도 없던 시절이라 그런 생각은 꿈도 못꾼다. 여하튼, 일견 이들과 배트맨은 프리터와 1000억 불의 차이(...) 외엔 별 다를 것도 없어보이지만 한꺼풀 까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배트맨은 어릴 적 겪었던 두 가지 트라우마에 자신의 인생 전반을 잡아먹힌 남자다. 그의 악에 대한 끝없는 집념과 정의감의 표출은 자기 자신에 대한 파괴 충동과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개인적인 복수의 겁화의 역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 두 개의 자아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부들거리는 줄을 잡고 당기는 팽팽한 형국 속에서 배트맨은 오늘도 고담의 밤 속을 활보하는 것이다. 둘 만으로도 꽉 차버린 내면에 브루스 웨인이라는 억만장자가 들어설 곳은 없다. 결국 그는 아이언맨과는 태생부터 다른 것이다. 아이언맨의 코스튬을 입은 바람둥이 억만장자가 아니라 바람둥이 억만장자의 페르소나를 뒤집어 쓴 박쥐인간... 사실 이 때문에라도 레이첼과는 애초에 싹수가 노랬다고 볼 수 있다. (안습)

이 와중에 만약 배트맨이 살인을 저지른다고 생각해보자. 가령 퍼니셔처럼 말이다. 그 순간 배트맨은 더이상 사람으로서의 존재의의를 잃는 것이다. 영화 속 조커가 그를 부르듯이, 'Freak'이 되는 것이다. 즉, 내가 보는 다크나이트는 조커의 영화면서 동시에 배트맨의 영화일 수 밖에 없다. 완벽하게 타락한 미친 놈이자 배트맨의 악을 비추는 거울인 조커가 선을 상징하는 하비 덴트를 제물 삼아 배트맨을 타락시키려한 것이 다크나이트의 플롯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투페이스가 되어버린 순간 하비 덴트의 케릭터는 완성되었고 그에 따라 영화에서의 개연성 또한 곁다리로 밀려난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 투페이스는 배트맨의 영웅으로서의 부활을 알리는 촉매로서 다음 시리즈에 비중 높은 악역으로 재등장하리라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사실 다크나이트 속의 고담은 너무 평화롭게 보였다면 막장일까?) 투페이스가 전면에 나서서 일을 벌일 때의 고담은 이미 영웅에 대한 기대심리도 박살난 지 오래일 것이고 (배트맨이 자신을 타락시킴으로써 보호하려했던 바로 그 영웅이 악당으로 돌아왔으니...), 아직 등장하지 않은 악당들이 너무도 많다. 악보다 어두운 영웅이 돌아오기엔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는 바로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조커의 이번 행동으로 슬슬 진정한 고담으로의 첫 발을 내딛은 것 같아 기쁘긴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어서 다음 편을!!!

조커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것이 없다. 그저 Two Thumbs up! 원작이 품고 있었던, 잭 니콜슨은 살리지 못했던, 바로 그 보라색 광기와 혼돈, 결코 웃을 수 없는 장난끼를 모조리 화면에 담아냈다. 짧고 히스테릭하면서 고저를 넘나드는 불협화음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질리게 만들었다. 특히나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혀놀림은 그저 감탄할 뿐. 원작의 특성상 저런 동작은 어디서도 참조할 수가 없는데 그걸 드러낸 히스레저가 정말 대단했다. 아니, 누구 말마따나 그는 조커에 씌였고, 결국 조커는 현실에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소름끼친다. 이 연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난 영화표를 한 번 더 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지독하다. 마치 두리안같다. 한 번 입에 대면 멈출 수 없는, 마약같은 영화다.

P.S 이 글을 쓰는 데는 로오나 님의 글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사실 지금 정신상태로 이 정도라도 썼다는게 용하다 싶다. 다만, 한가지 태클을 걸자면 조커의 자리를 결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배트맨 역시 그렇다. 힘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것만으로는 저 자리에 설 수가 없다. 아이언맨이든 퍼니셔든 불가능하다. (데어데블이라면 가능할까?) 본질적인 어둠과 모순을 끌어안고 있는 자만이 가능할 것이다.

P.S 사실 간단한 망상 겸 이후 스토리 전개를 좀 써보려고 했으나 다음으로 미루겠다. 뭐 별 거 없고 원작 스토리 상의 몇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에피소드들을 이용한다면 조커는 반드시 나와야하며, 스토리 상으로 이번보다 더 한 충격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게 되리라.)



by 지네 | 2008/08/11 02:18 | 소통의 창 | 트랙백(2) | 덧글(4)

어둠의 기사, 그의 귀환

오늘 강남 교보문고에 들러 책 세 권을 구입했다. 원래는 들릴 예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조리 충동구매인 것이 분명하다.

한 권은 설득의 심리학 2권, 나머지 두 권은 프랭크 밀러의 'Dark Knight Returns' 였다.

서점을 나오자마자 근처 카페에서 포장 비닐을 뜯고 단숨에 두 권을 읽어내렸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힘이 넘실대는 펜 터치는 여전했다. 날카롭고 거침없는 검은 선으로 그려진 노년의 부르스는 이제 청년기의 힘과 패기를 잃었지만, 아직도 그의 마음 속에 내려앉은 거대한 박쥐는 그를 악보다 어두운 곳을 방황하는 칠흑의 기사로 내몰았다.

현재 북미를 지나 한국을 강타하기 시작한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의 광기에 행여 배트맨이 눌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어째서 특출난 초능력이 없는 자가 수많은 히어로들 중에서 우뚝 설 수 있었는 지, 어째서 그런 광기의 소유자를 상대로 고독한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해 한조각 근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by 지네 | 2008/08/06 23:26 | 잡기장 | 트랙백 | 덧글(1)

피겨왕 연아



싱크로가 ...

아... 연아야. 이 오빠는 그저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단다. :->

by 지네 | 2008/08/03 21:08 | 잡기장 | 트랙백 | 덧글(2)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